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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래 칼럼] 매니페스토와 의정활동계획서 - 경기일보 2016. 03. 15 -

dd100 2016. 3. 16. 09:29

말도 많은 4·13총선 후보자 공천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공천 신청자들은 신청 서류 작성 때부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된다. 

이미 각 정당은 국회의원 후보공천 신청자들로부터 이력서, 병적사항확인서, 재산보유현황서는 물론 세금납부증명서, 배우자가 포함된 범죄경력에 관한 증명서 등을 각종 서류를 받아 이를 공천후보자 검증자료에 활용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25개, 국민의당은 15개의 각종 서류를 받고 있으며, 또한 공천신청 비용도 각각 100만원, 200만원, 300만원씩 납부하고 있다.

이중 우리가 눈여겨 볼 수 있는 신청서류 중의 하나는 의정활동계획서이다. 이 계획서는 형식에 있어 주요 정당들 간에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후보신청자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을 경우, 과연 어떤 의정활동을 계획하고 있는가를 기술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새누리당은 의정활동 목표, 국정현안 과제, 상임위원회 및 입법활동 계획 등과 같은 구체적인 활동 계획을 담은 내용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구체적 요구 사항 없이 기술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 후보공천 신청 서류에 의정활동계획서가 첨가된 것은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이다. 그때까지 각 정당은 일종의 ‘참 공약’으로 지칭되는 매니페스토(manifesto)의 한 형식인 의정활동계획서 제출이 없었다. 매니페스토는 ‘헛공약’ ‘뻥튀기 공약’이 아닌 구체적인 예산계획까지 표기된 실천 가능한 공약을 말하고 있는데, 이미 영국과 같은 선진민주국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실시되어 민주정치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당시 필자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로 한국의 선거문화를 변화시키고자 매니페스토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운동은 2006년 지방선거 시부터 도입되었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각 정당과의 협약식 개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지원 등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필자는 모 정당의 요청으로 공천심사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 필자는 공천신청서류에 매니페스토의 한 형식인 의정활동계획서를 포함시킬 것을 강력히 제안하여, 해당 정당은 물론 다른 정당들도 매번 국회의원 선거 시 공천심사 신청 서류에 포함시키고 있다.

필자는 당시 의정활동계획서를 공천심사 시 자료로 활용하였으며, 이 계획서를 당 사무국에서 보관, 당선된 국회의원의 경우, 이를 4년 후 평가하여 차기 공천 심사 시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하였다. 물론 필자는 특정 정당의 당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 후 해당 서류를 당에서 보관하였는지 또는 19대 국회의원 공천 시 심사 자료로 활용하였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이번 20대 국회의원 후보 공천 시 의정활동계획서가 단순히 공천신청 서류에 요식행위로 제출되었는지 또는 후보자 면접 시 심사 자료로 활용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최근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분석하여 보면 공천심사 시 제출한 의정활동계획서는 단순히 신청 서류의 한 형식요건으로 제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19대 국회의원들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의정활동계획서를 공개한 의원들은 거의 없으며, 더구나 자신이 선거 때 약속한 선거 공약 이행진척도를 유권자에게 알려주고 있는 국회의원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지난 2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역구 국회의원 239명을 평가한 결과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행한 평가 결과에서 의정활동계획서를 공개한 의원과 미공개한 의원을 비교해 보면, 선거과정에서 의정활동계획서를 작성, 공개한 의원의 공약 실천도가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선거과정에서 입법활동계획을 체계적으로 준비한 의원과 그렇지 못한 의원과의 차이가 극명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국회의원 후보 공천 신청자가 제출하는 의정활동계획서는 일회성 공천신청 서류가 아니다. 후보신청자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계획서에 있는 것과 같이 활동을 하겠다는 하나의 약속이며, 또한 이를 실천해야 될 것이다.

유권자들 역시 후보자가 제출한 의정활동계획서를 꼼꼼히 살펴 이번 총선에서 투표 시는 물론 차기 총선 투표 시에도 참고해야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인과 유권자와의 신뢰관계가 형성될 때 한국정치문화가 한 단계 발전, 선진민주정치국가가 될 수 있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전 동덕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