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언론기사 및 기고문)

[김영래 칼럼] 총선, 유권자가 과연 주인인가 - 경기일보 2016 4.4 -

dd100 2016. 4. 5. 11:11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사상가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국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다. 국회의원은 선출되면 국민은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선거에서 유권자는 선거 후에 정치인들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는 13일 실시되는 20대 국회의원 선거도 벌써 중반을 치닫고 있어 일주일 후면 유권자의 심판이 결정된다. 국회의원 후보자들은 시장, 지하철 역 입구, 버스 터미널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허리를 180도로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심지어 경로당에 가서는 큰절로 인사를 드린 후 무릎을 꿇는 후보도 있다.

이들 후보자의 한결같은 외침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유권자 여러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선거에서 주인은 유권자라는 것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이며, 또한 후보자의 말은 옳은 이야기다.

그러면 과연 선거에서 헌법에 명시된 것과 같이 또한 후보자의 말과 같이 유권자가 주인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를 비롯하여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 등 수십 차례의 선거를 치렀으나, 과연 선거에서 유권자가 주인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고 또한 행세를 하였는지 자문자답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에서 진행되는 중요한 과정을 살펴보면 유권자가 주인으로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권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치인들이 자신들만의 이해관계에 따른 편익에 의거 선거과정을 정치인만을 위한 리그전을 펼침으로서 주인인 유권자는 소외당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후보자 공천과정에서 유권자는 주인으로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선거에 있어 공천은 국회의원 후보자라는 상품을 선거라는 시장에 내놓아 소비자인 유권자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제1차 과정이다.

 

제1차 과정이 잘못되면 그 후의 과정을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엉클어지게 되어 있다. 즉 후보자 공천이 잘못되면 아무리 많은 상품을 시장에 내놓아도 결국 불량 품질 속에서 선택해야 되기 때문에 좋은 물건을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은 정당의 주인인 당원이나 또는 일반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되기보다는 각 정당의 계파 간의 이전투구 현상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여야 공히 그 동안 정치개혁 차원에서 상향식 공천을 약속, 당헌·당규까지 개정하였지만 실제의 공천 과정은 또 다른 개혁의 미명 하에, 또는 시간상의 이유 등으로 결국 상향식 공천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고 원칙도 기준도 없이 상처투성이의 공천파동만 야기, 정치불신만 증폭시켰다.

선거는 주인인 유권자가 대표자 선택을 통해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당의 주인인 당원이나 일반유권자는 공천 과정부터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각 정당별로 또는 지역구 별로 소속 정당의 후보자를 공천하는 예비선거제도가 정착되어 우리나라와 같은 공천파동은 없지 않은가.

국민이 주인이라는 인식 하에 상향식 공천을 하겠다는 정당 대표의 약속과 당헌·당규를 믿고 공천을 받기 위하여 선거운동을 했던 후보자와 지지자들의 허탈한 표정, 이것은 루소의 말과 우리 국민은 ‘투표 때’가 아닌 이미 ‘투표 전’에도 유권자로서 주인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선거에서 주인은 후보자가 아닌 유권자이다. 후보자는 유권자들의 봉사자이자 대변자일 뿐이다. 투표 때만이라도 유권자가 철저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정당과 후보자들이 제시한 정책과 공약의 실현 가능성, 국가발전에 대한 비전 등을 꼼꼼히 살펴, 참된 일꾼에게 투표한다면 선거 후에도 주인대접을 받지 않을 가. 결국 선거결과는 유권자의 책임이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전 동덕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