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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와 新조선책략 - 경기일보 2015. 11. 09 -

dd100 2015. 11. 10. 18:36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달 31일 박 대통령은 중국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한·중회담을 했고, 11월 1일 한·중·일정상회담이 3년반만에 개최되기도 했다. 또 지난 2일에는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총리 와의 한·일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한·중·일회담에서는 동북아 정세를 비롯, 3국간 경제협력, 북핵문제 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한 논의를 통해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한·일회담은 오찬, 공동성명서 발표도 없이 끝났다. 다만 앞으로 양국 정상이 다시 만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했다는 것이 소득이라고 할 정도이다.

지난 2개월간 한국를 비롯한 동북아에서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은 9월 3일 파격적인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과 이를 계기로 한 한·중 정상회담을, 같은 달 25일 워싱턴에서 미·중 정상회담, 그리고 지난 달 10일 북한의 당 창건 70주년 기념식의 류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이 있었다.

 

그 후 지난 달 16일 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회담 등 동북아를 둘러싼 미묘한 외교가 전개되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틈새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 정세가 미묘하고 또한 갈등이 심화될 경우, 외교적 곡예를 해야 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혹자는 지금의 한반도 정세가 조선조 말의 주변정세와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현재 한국의 국력은 그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주변정세는 당시와 흡사점이 있다.

이런 한반도의 정세 변화와 관련, 조선조 말 당시 조선의 외교정책 방향에 대하여 언급한 주일 청국공사 참사관 황준헌(黃遵憲)이 지은 <조선책략>(朝鮮策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황준헌은 이 책에서 극동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해 조선의 외교정책은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하여 자체의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황준헌은 중국과는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를 증대한다면 러시아가 중국이 무서워서도 감히 조선을 넘보지 못한다는 것이며, 일본은 조선이 중국 이외에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과거부터 통교해 온 유일한 국가이기에 서로 결합해야 된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경우, 비록 조선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남의 토지나 인민을 탐내지 않고, 남의 나라 정사에도 간여하지 않는 민주국가로서 오히려 약소국을 돕고자 하니 미국을 끌어들여 조선의 우방으로 해두면 러시아로부터의 공략의 화를 면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황준헌의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의 외교정책을 언급한 조선책략은 당시 조선 조야에 큰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또한 이로 인한 논쟁도 상당했다. 이 책은 고종을 비롯한 집권층에게는 큰 영향을 주어 1880년대 이후 조선이 비록 소극적이나마 개방정책의 추진, 서구 문물을 수용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국력이 약한 조선은 결국 일본의 침략 야욕에 의해 식민지가 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외교는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주변정세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대응 정책을 통해 강한 국력을 기반으로 외교정책을 수행해야 된다. 

특히 미·중·일·러 등 주변 4대강국과의 숙명적인 외교관계는 한국이 직면한 외교 현실이다. 우리는 19세기 황준헌이 주장한 조선책략을 새롭게 음미하여 21세기형의 국가이익 추구를 위한 신조선책략을 수립해야 되지 않을까. 한국 외교가가 새로운 시련기를 맞고 있음을 외교당국의 직시, 험량한 외교파고를 헤쳐나가기 바란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ㆍ전 동덕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