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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래의 정치이야기] 정치의 사법화와 정당의 정치력 부재

dd100 2022. 9. 1. 14:31

[공감신문] 김영래 칼럼니스트 =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가 최근 한국정치의 가장 중심적인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 8월26일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재판장 황정수)는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의 직무 집행을 본안 판결 확정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는 국민의힘 비대위 전환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10일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사실상 받아들이면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비대위원장 효력 정지로 혼란에 빠진 여당

재판부는 국민의힘에서 지난 8월9일 개최한 전국위원회 의결 중 비대위원장 결의 부분이 무효에 해당한다며 “전국위원회 의결로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 주호영이 전당대회를 개최해 새로운 당 대표를 선출할 경우 당원권 정지 기간이 도과되더라도(지나더라도) 이 전 대표가 당 대표로 복귀할 수 없게 돼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법원의 결정에 대하여 국민의힘은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이 나오자 서울남부지법에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국민의힘은 “비상 상황이라는 부분에 대해 어디까지나 정당 내부의 의사결정인데 내부 판단에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비상 상황이 아니라고 재단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결정”이라며 “법원이 정당정치에 관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댄 것도 잘못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국회의원 총회를 거쳐 새로운 비대위를 꾸리기로 하고, 29일 권성동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무를 맡고 오는 추석 전에 비대위원장을 새로 선출하기로 했다.

이에 이 전 대표는 29일 비대위 활동 중단을 위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추가로 제출했다. 최근 법원의 판결에 따라 “‘무효 비대위’가 ‘무효 직무대행’이 당을 운영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비대위를 꾸리려면 전국위원회 의결이 필요하지만, 서병수 전국위 의장은 소집 거부의사를 밝히고 사퇴했다.

따라서 올해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모두 이기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지 100일이 겨우 지난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심한 격량 속으로 빠져들어 과연 어떻게 이 파고를 헤쳐 나갈지 극히 의심스럽다. 국회의 절대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야당을 상대하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여당의 자중지란이 발생, 앞길을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해 심한 혐오를 느끼고 있으며, 또한 불안하다.

 

최근 정치의 사법화 증가 추세

정치의 사법화는 원론적으로 입법부와 행정부 등에서 결정한 국가의 주요 정책이 정치 과정이 아닌, 사법부의 판결 과정에서 결정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이는 국회 등에서 민주적 공론 과정을 통해 해결해야 될 중대한 정치적 사안을 법원의 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하려는 현상을 지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과 함께 양대 최고법원 지위를 가진 헌법재판소가 정치의 사법화 논란의 대상이었다.

정치의 사법화의 대표적 사례는 2004년 10월21일 ‘서울=수도’라는 관습헌법을 근거로 헌법재판소가 행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이 문제는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지 법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야정당은 이를 정치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여부를 요청함으로서 당시 최대 국정 현안이었었던 행정수도 이전은 헌재의 결정에 따라 무산되어 오늘과 같이 행정부는 서울과 세종특별자치시에 분산, 국정수행에 불편은 물론 막대한 예산낭비가 심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 이외에도 이라크 파병(2004.4.29), 통합진보당 해산(2014.12.19), 김영란법 존치(2016.7.28) 등 굵직한 현안이 그간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판가름 났다. 그러나 최근 정치의 사법화는 헌법재판소 차원을 넘어 일선 법원과 검찰에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3·9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여러 건 고소·고발한 사례도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권 자승자박이 될 수 있어

최근 정치의 사법화는 본안 소송도 아닌 가처분 인용 여부에 따라 집권 여당의 운명이 내맡겨지는 수준까지 전락했다. 국민의힘은 앞으로 있을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추가 신청, 국민의힘에 의한 가처분인용 이의신청은 물론 본안소송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여당의 운명은 물론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도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정치의 사법화로 야기될 집권 여당의 진흙탕 싸움은 한국정치사에서 처음으로 겪는 사건이다. 앞으로 국회나 정당 등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법안이나 정책이 발생할 경우, 이에 사용되는 용어의 자구(字句)는 물론 행위까지도 일일이 법원의 판결에 의존하는 최악의 사태도 올 수 있다.

정치는 공자의 말씀과 같이 ‘정자정야’政者正也)로서 바르게 하는 것을 뜻하며, 이는 또한 민주정치의 근본원리이다. 정치의 영역과 법의 영역은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었으면서 또한 상호 각자의 영역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 생물과 같은 정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엄격한 용어 해석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공론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되며, 이것이 정치력이다.

정치의 본산인 정당들의 당헌·당규는 법령처럼 세밀하게 규정되기 보다는 매우 추상적이고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해서 분쟁이 있을 시 정치력을 발휘하여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이를 사법 과정에 의존하게 되면, 정치는 자승자박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정도가 아닌 꼼수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이는 정치권이 스스로 정치력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정당 내의 갈등문제는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치력을 발휘, 민주적 공론과정을 거쳐 스스로 해결하는 하는 것이 정치력이고 또한 정당 지도자의 리더십 아닌가. 정치의 사법화로 일시적으로 승자가 될지 몰라도 결국 정치권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10일 있으면 민족 대이동인 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명절은 정치 이야기가 가장 풍성한 시기로 정치권에 대한 여론 형성의 최적기다. 올해 추석 명절에 최근 화두가 된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물론 정치권의 정치력 부재에 대한 여론 형성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다.

출처 : 공감신문(https://www.go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