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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격과 촛불시위 - 경기일보 2016-12-12

dd100 2016. 12. 1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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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상품에는 품격이 있으며, 또한 국가에게는 국격이 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또한 막강한 권력과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다고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은 돈과 권력, 지식에 관계없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상품도 값이 비싸다고 반드시 좋은 물건은 아니다.

이와 같은 격의 구분은 국가에도 적용된다. 인구 약 1억4천600만명, 세계 제1위의 광대한 영토, 부유한 자원, 세계 제2위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는 분명 대국이다. 반면 인구는 불과 약 820만명, 국토면적은 러시아의 414분의 1정도인 유럽의 소국 스위스는 부존 자원도 풍부하지 못하다. 이들 양 국가를 국격의 관점에서 비교할 때 러시아가 스위스보다 국격이 높다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촛불시위에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

최근 외신들은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전개된 촛불시위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무려 7주째 지속된 촛불시위는 주최 측의 추산에 의하면 연인원 약 750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백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촛불 시위였지만 기물파괴나 인명부상과 같은 폭력행사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뭉쳐진 민심은 천심이 되어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 가결까지 이어져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는 상황까지 발전되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대규모 시위가 수차례 있었다. 멀리는 4·19 학생혁명에서부터 ‘87년 민중항쟁, 그리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운동까지 수십만명이 참가한 각종 시위가 개최되었다. 4·19학생혁명의 경우, 많은 학생들이 경찰의 총에 의하여 희생되었는가 하면 또한 광우병 사태 때는 경찰, 시위참가자 등 상당수 부상당하기도 하는 등 각종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법에서 규정한 시위 범위를 최대한 준수하였으며, 경찰은 물론 사법부도 성숙한 시민의 시위 질서에 화답하여 평화적으로 개최되었다. 때문에 법원은 경찰의 시위 금지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믿고 청와대 100미터 앞까지 행진하도록 허용한 것이 아닌가. 필자가 지난 11월19일 광화문에서 목격한 시위 장면은 문자 그대로 문화제 행사를 겸한 평화적 집회였다.

이런 평화적인 촛불시위는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으로 외국 언론에 의하여 조롱거리가 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추락된 대한민국의 국격을 상당 부분 회생시켰다고 본다. 세계 각국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가 수주일째 계속되면서 평화적으로 전개된 사례는 없기 때문에 외신들은 한국 시민들의 성숙한 민주의식을 대서특필한 것이다. 이는 한국민의 귀중한 사회적 자본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국격을 제고시켜야

국회가 절대적 다수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가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토요일 박 대통령 조기퇴진을 주장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역시 개최되었다. 물론 과거에 비하여 강도도 약하고 또한 다분히 탄핵 소추 가결 축하의 의미도 있는 문화제 행사의 시위였다. 그러나 국회에서 민의가 반영된 탄핵 소추가 가결된 지금, 비록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여부 결정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판관들의 양식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더욱 성숙된 시민의식이 아닐지.

이제 정치권은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성숙한 시민의식을 승화시켜 국정안정을 도모해야 된다. 여야정당은 물론 국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롯한 행정부는 협치 정신을 발휘, 국정혼란을 조속히 종식시켜 한국의 성숙한 정치의식을 세계에 보여 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최순실 게이트’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이 아닌지. 정치권이 분노한 촛불민심을 협치로 풀어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성숙한 민주정치가 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허망이 아니길 바란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