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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당명과 한국정치의 유산 - 경기일보 216. 8. 29. -

dd100 2016. 9. 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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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60년 전 초등학교 5학년 시절에 있었던 희미한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1956년 5월15일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이다. 그해 봄 고향인 여주시 소재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던 중 낯 모르는 아저씨로부터 대통령 선거 벽보를 받아들고 내용도 모르면서 집으로 가져와 집 대문에 붙였다가 선친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벽보를 다시 철거한 기억이 있다.

당시 문제가 된 선거 벽보는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의 신익희 대통령 후보와 장면 부통령 후보의 ‘못살겠다. 갈아보자’ 라는 선거 구호가 새겨진 벽보였다. 당시 선친은 동리의 이장(里長)으로 계셨으니, 철모르는 아들이 야당 대통령 후보 선거 벽보를 가지고 와서 집 대문에 붙였으니, 상당히 당황하셨을 것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시기에 이장 집의 대문에 야당 선거 벽보를 붙인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던 시절이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불과 창당된 지 1년도 안된 신생정당인 야당 민주당은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국부로까지 칭송을 받던 이승만 대통령이 소위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을 통해 영구집권의 길을 마련, 3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였으며, 이에 대항한 민주당은 신익희 후보였다. 

신익희 후보의 유세가 있던 한강백사장에 무려 100만 인파가 모일 정도로 야당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가 있었다. 만약 신익희 대통령 후보가 급서하지 않았다면 선거결과는 다를 수도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국정치에 ‘민주당’이란 당명은 상당한 정치적 자산이다. 서구선진국에서도 ‘민주(民主)’가 들어간 당명은 상당한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다.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민주당은 말할 필요도 없고 상당수 국가에서 ‘민주’라는 당명을 단독으로 또는 다른 용어와 합성하여 사용하는 사례는 아주 많다. 이는 민주정치를 추구하는 당의 이미지와 상당한 관계성을 나타내는 이미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1955년 9월18일 창당된 민주당은 5·16군사쿠데타와 더불어 해산되었지만 그 후 수많은 유력 정치인과 정당들은 민주당의 법통을 또는 정치적 자산을 계승하려고 때로는 법적 다툼까지 했다. 

예로 삼김(三金)의 김영삼은 통일민주당, 김대중은 평화민주당, 김종필은 신민주공화당의 이름 하에 삼김정치를 하였다. 심지어 김영삼과 김대중은 자신의 정당의 약칭을 ‘민주당’으로 칭하려고 서로 공방을 벌였던 때도 있었다.

아직도 60대 이상의 유권자들에게 이런 민주당의 이미지는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상당수 장년층 유권자들은 ‘민주당’하면 ‘전통야당’, ‘수권정당’, ‘ 여당을 견제하는 참신한 정책 정당’의 이미지를 연상하고 있다. 최근에도 민주당이란 당명을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고수하려는 상당수 정치집단들이 있다.

지난 토요일 전당대회를 개최,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한 더불어민주당도 ‘민주당’이란 당명에 대한 애착은 상당한 것 같다. 지도부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자들이 자신이 60년 민주당의 전통을 더욱 잘 계승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하고 열변을 토했다. 사실 지금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를 검색하여 보면 1955년 9월18일 민주당 창당부터 당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당의 발자취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의 홈페이지 주소는 www.theminjoo.kr로 되어 있으며, 약칭으로는 ‘더민주’라고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 ‘민주당’을 검색하면 제1야당이 아닌 군소정당 ‘민주당’(www.minjoodang) 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이 ‘민주당’은 당헌에 여하한 경우에도 당명인 ‘민주당’은 변경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강한 애착을 나타내고 있다.

새가 양 날개로 날아가듯이 민주정치에 있어 여야정당은 필요조건이다. 강력하고 건전한 야당이 있을 때 여당도 발전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새로운 지도부 구성으로 내년 대선에서 과거 민주당과 같은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지켜보자. 더불어민주당은 말로만 과거 민주당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하지 말고 건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정당으로 발전, 수권정당으로서의 참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전 동덕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