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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정치, 그리고 정치인의 영욕 - 경기일보 05.19 -

dd100 2015. 5. 19. 15:48

돈과 정치,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정치에 있어 돈은 자동차 엔진의 윤활유와 같다. 자동차에 윤활유가 없으면 엔진이 움직이지 않아 자동차를 굴릴 수 없는 것 같이 돈이 없으면 정치가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품질이 좋지 못한 또는 가짜 윤활유를 쓰면 엔진 고장이 발생, 자동차를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정치에 있어 정치자금인 돈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인의 경우, 정치자금은 선거 때 선거자금으로, 또한 정당은 평상시 조직운영이나 정책 활동을 위하여 상당한 정치자금을 필요하게 된다. 때문에 정치자금을 정치의 모유(mother’s milk), 또는 민주정치를 위한 필요악(necessary evil)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치인이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자금을 유권자로부터 기부받아 정치를 하게 되면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어 국가의 존경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나 돈 많은 부자들과의 뒷거래를 통한 투명하지 못한 불법 검은 돈을 받아 사용하게 되면 정치도 부패하고 정치인은 부패정치인으로 낙인, 권좌에서 물러남은 물론 법의 심판을 받아 처벌도 받게 된다.

정치인의 경우, 정치자금을 어떻게 조달·운영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장악 여부가 결정된다. 이런 정치자금의 운영 방식에 따른 권력의 부침은 일제로부터의 독립 후 해방공간에서도 있었다.

해방 직후 이승만과 김구의 경우,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였지만 미국식의 정치훈련을 받은 이승만은 정치자금의 효율적인 운영을 통하여 김구와의 대결에서 권력을 쟁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정치자금의 큰 줄기는 지주계급 중심인 한국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이승만과 김구 모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구 자신은 지금까지 돈 없이도 독립운동을 하여 돈이 크게 필요치 않으니, 나에게 줄 돈은 미국에서 돌아와 여러 가지로 돈이 필요한 이승만에게 주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승만은 김구에게 갈 정치자금까지 받아 각종 정치조직을 운영하는데 사용, 그 후 해방 공간에서 권력을 장악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 전두환·노태우 등 2명의 전직 대통령은 불법으로 막대한 검은 돈을 기업인들로부터 받아 정치자금을 운용한 죄로 구속되는 불명예스러운 지도자가 되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도 아들이나 형제들은 물론 측근들이 검은 돈을 불법으로 거래, 구속됨으로서 결코 정치자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불거진 ‘성완종 리스트’는 한국정치에 불법 정치자금 거래로 인한 정치권의 흑막을 또 여지없이 노출시키고 있다. 불과 1개월 전만해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겠다던 전직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혐의로 총리직 사퇴 후 검찰의 조사를 받았는가 하면, 한때 모래검사로 명성을 떨치던 현직 도지사가 후배검사로부터 장시간 조사를 받고 이제 기소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돈과 정치, 그리고 정치인과는 뗄 수 없는 불가분이 관계에 있지만, 이럴수록 정치자금은 더욱 투명하고 깨끗하게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공천헌금 운운하고, 대통령 선거 후 선거자금문제로 정치권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한국정치는 언제까지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후진적인 정치문화에 머무를 것인지.

정치인들이 자기 분수조차 못 가리는 ‘검은 돈’의 유혹 때문에 정신 나간 ‘돈정치’가 되어서는 민주정치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자금제도를 확립,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정치자금법을 조속히 개정, 부패정치인을 퇴출시키는 엄격한 정치자금제도를 마련하기 바란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전 동덕여대 총장∙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