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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래 칼럼] 정치가 케네디와 정객 닉슨 - 경기일보 3.16 -

dd100 2015. 3. 17. 09:21

 
     
경기일보 2015 년 03 월 16 일 월20:20:10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케네디와 제37대 대통령 닉슨은 1960년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동시대 정치인이지만 두 사람에 대한 미국 국민의 평가는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케네디는 1917년, 닉슨은 1913년으로 비슷한 시기에 출생하여 정치를 시작한 이들 두 사람은 각각 하원과 상원에서 의원생활을 하였고, 1960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한 라이벌 정치인이다.

케네디는 동부 매사추세츠 출신이고 닉슨은 서부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TV토론에서 패기있는 젊은 후보자였던 케네디가 승리하여 제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1963년 11월 텍사스의 댈러스시 방문 중 저격되어 사망하였다.

반면 닉슨은 대선 패배 후 캘리포니아 주지사선거에도 패배하는 등 불운을 겪다가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제37대 대통령이 되었다.

케네디는 최초로 가톨릭교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 뉴 프론티어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미국의 비전을 제시, 희망을 주었으며, 재임 중 베를린 봉쇄, 쿠바 사태 시 소련과는 일전을 불사하면서까지 단호한 정책을 추진, 문제를 해결하여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지금도 미국에서 케네디 집안은 정치명문가로 국민적 존경을 받고 있다.

반면 부통령까지 역임, 화려한 정치경력을 가진 닉슨 대통령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워터게이트 스캔들이라는 미국 초유의 선거부정행위를 자행하여 의회에서 탄핵 직전까지 가는 수모를 당해 대통령직을 중도에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야누스의 행태를 가진 정객의 오랜 기간 정치경험은 개인의 권력 쟁취와 유지, 확대를 위한 것이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설 명절은 오랜만에 흩어진 가족, 친지들이 모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따라서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도 무성하다. 특히 최근 국무총리 취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일부 각료의 개각,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 장례 시 쏟아진 각종 정치언어 등으로 정치인들에 대한 시중의 평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무성하지만 한국에서 존경할 만한 정치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약 80% 정도가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을 정치인이라고 답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생 상대 설문조사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는 처음 대하는 외국인보다도 낮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매일같이 TV는 물론 신문, 라디오에 단골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에 가장 친근해야 되고 또한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여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정치인들의 자화상이다.

국어사전에 정치가는 ‘정치에 관여했거나 관여하고 있는 사람’을, 정객은 ‘정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다소 애매하게 추상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영어 사전에는 정치가는 ‘Statesman’이라 하며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정객은 ‘Politician’이라 표시하며 이를 정상배, 정치꾼 등으로 국어사전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 국민들에게 케네디는 정치가, 닉슨은 정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가는 권력보다는 국가장래에 대한 비전과 정치인의 소명의식을 강조한다면, 정객은 권력의 쟁취를 위해서는 권모술수와 사적이익을 우선시하여 국민들로부터 지탄이 대상이 되고 있다.

신뢰받지 못하는 한국정치는 케네디 같은 정치가보다는 소위 닉슨과 같은 정객들이 정치판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난주 설 직후 민심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정치에 대한 신뢰도는 역시 낮다. 국민들은 사욕과 권력에 도취된 정객보다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에 의하여 이뤄지는 한국정치를 보고 싶다.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