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래(아주대 명예교수,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1. 정치란 무엇인가.
1). 정치적 대화가 실종된 한국사회
새해가 되면 지인들과 만나 덕담의 인사를 나누게 되며, 또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 통상적인 새해맞이 풍습이다. 그러나 2025년 을사년 새해 벽두는 물론 최근까지도 국민들 사이에 이런 즐겁고 희망찬 모습을 각종 언론이나 TV방송을 통하여 보기 어렵다.
올해 2025년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80주년이 되는 해이며,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민주적 헌법을 근간으로 수립된 지 77년이 되는 역사적이 해이다. 한국은 제1의 물결인 신생국의 건설, 제2의 물결인 근대화와 산업화, 제3의 물결인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달성, 제4의 물결인 선진복지사회를 지향해야 될 국가적 과제를 지니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려 140여개의 신생국이 탄생하였지만, 한국과 같이 신생국의 건설, 산업화, 민주화를 단계적으로 또한 성공적으로 달성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에 한국은 미국 등과 더불어 세계 7개 국가에 지칭되는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이면서 동시에 인구 5천만 이상인 국가)에 속하고 있으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는 2021년 7월에 한국을 공식적으로 선진국의 지위를 공인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10일 실시된 제22대 총선거 이후 여야 간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정치가 실종되어 국정은 표류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12월3일 선포한 비상계엄령 이후 정국은 초불확실성으로 인해 국민들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안해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의결되어 직무가 정지되었으며, 이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헌정사상 초유로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어 구속, 수감되기도 했는가 하면, 대통령 직무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소추되어 최상묵 부총리가 ‘직무대행에 직무대행’까지 이르는 헌장사상 초유의 사태로까지 오는 희극적인 한국정치가 되고 있다.
최근 정치를 끊고 있다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신문의 경우, 정치면을 아예 제쳐놓고 문화면이나 스포츠면 만을 펼쳐 보는가 하면, TV의 경우, 정치에 관련된 뉴스 화면이 나오면 바로 드라마나 스포츠 경기 장면으로 돌리고 있다고 한다. 동창회 등 각종 친목모임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일종의 금기사항으로 되어 있어 대화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을까? 왜 정치에 대한 대화가 각종 모임에서 금기사항이 되고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정치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social) 동물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일상생활은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정치와 유리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2).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정치인들은 무엇을 위하여 정치를 하고 있는가? 정치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권력은 과연 무엇을 위하여 행사하는 것인가? 정치지도자들은 사익을 추구하는가 또는 공익을 추구하는가?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 국가가 공동체 구성원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되는가? 등 정치와 관련된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이런 질문은 아주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다양하며, 또한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의 질문은 지금까지 수많은 정치철학자 또는 정치지도자들에 의하여 되풀이 된 질문이지만, 그러나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아직까지 공동체 구성원의 합의가 쉽지 않은 상태로 논쟁적이다.
이는 정치라는 용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의성에 우선 기초하고 있다. 정치란 주어진 환경과 지도자가 제시하는 비전, 정치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국가의 역사와 전통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에 의하여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관점에서 합의된 개념을 도출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정치학자의 숫자만큼이나 정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2. 정치철학자와 행복론
정치에 대한 다의적인 해석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해석의 하나는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Happiness)의 추구인 것이다. 행복이란 용어에 대한 해석, 또한 이를 위한 정치체제의 복합성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정치가 국가와 지역사회와 같은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제1차적인 목적에 있다는 것에 대하여 정치지도자들은 물론 플라톤과 같은 고대 정치철학자들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1). 플라톤의 행복론
정치철학자 중에서 정치와 관련된 행복의 문제를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다룬 인물은 플라톤 (Plato:기원전 427~346)이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국가론」 (The Republic)은 정치와 행복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다. 즉, 「국가론」은 플라톤의 철학과 정치학에 관한 주저로, 기원전 380년경에 스승 소크라테스 주도의 대화체로 된 것이며, 이 저서는 철학과 정치이론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지며, 플라톤의 저작 중 가장 잘 알려진 책이다.
플라톤의 대화에서 주인공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다양한 아테네인과 외국인들은 올바름(正義)의 정의(定意)에 대해서 논하고, 철인왕(哲人王: Philosopher King))과 수호자들이 다스리는 이상사회를 지칭하고 있으며, 정의로운 사람이 불의한 사람보다 더욱 행복한지를 논하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와 정의가 무엇인지,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설명하며 이상국가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철인정치를 주장하고 있다. 플라톤은 「국가론」 에서 철인왕이 지배하는 이상국가를 논하고 있으며, 철학자가 마음만 먹으면 권력과 철학이 결합하여 이상적인 지도자가 되어 이상국가를 건설, 공동체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322)는 오늘날 학문세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상사가로서 ‘만학(萬學)의 아버지’로 지칭할 정도로 여러 가지 학문분야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정치학」(The Politics)에서 정치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선(Goodness)의 추구이며, 이는 덕의 정치(The Politics of Virtue)로서 이를 통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행복의 문제를 주관적인 쾌락에서가 아니라 이성적 활동의 측면에서 논했다. 행복이란 이론과 실천의 지속적 병행을 통한 자기실현이다. 플라톤의 사상을 계승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올바르게 행동하는 윤리적인 삶이라고 규정하면서 여기에서 행복에 대한 논의가 윤리적 논의로 이행했음에 주목하여, 윤리적 삶을 위해 몸소 도덕적 행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있어서 공동체와 이성을 강조하였다. 즉, 공동체 사회 속에서 타인의 장점을 발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것을 나누면 공동체의 행복이 달성되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베풀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함으로서 공동체는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인간의 이성적 기능을 통하여 얻어지는 즐거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의 행복 추구에 있어 입법자(Legislator)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입법자의 역할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선행에 익숙해져 올바른 성품을 형성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이 일을 해내지 못하는 입법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목적 달성에 실패한 것이며, 이런 차원에서 좋은 정치체제와 나쁜 정치체제가 구분된다고 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서구 정치체제의 사상적 기틀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바, 특히 행복 추구를 위한 정치체제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개인이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해도 사회제도나 전체적인 사회구조가 비도덕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개인의 도덕성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도덕성도 요구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치체제가 도덕성을 지킬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으며, 이런 정치체제의 하나가 일종의 공화주의(Republicanism)인 것이다.
3). 벤담의 공리주의 행복론
벤담(Jeremy Bentham: 1748-1732)은 영국의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사회사상가이다. 벤담은 1776년 「정부론 단편」을, 1789년에는 「도덕 및 입법원칙에 대한 서론」을 공표하였다. 그는 이 저서에서 공리의 원리를 가지고 개인적 도덕행위 및 사회적 입법을 규정하고 있다.
벤담에 있어서 도덕과 법률은 일치하는 것이며, 양자의 기초원리는 공리주의, 즉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프랑스 혁명이 무정부적 혼란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 프랑스 혁명사상, 즉 혁명의 기초를 이루는 자연법사상에 반대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가하였다.
벤담의 철학은 쾌락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쾌락주의에 따르면 사람들의 행동은 쾌락과 고통이 지배하며, 쾌락은 곧 선이며 행복이라는 것이다. 반면 고통은 악이고 불행임으로 따라서 올바른 행위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쾌락의 양을 늘리는 것이고, 잘못된 행위는 쾌락의 양을 줄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행위가 옳고 잘못되었는지는 쾌락을 계산해 밝힐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외에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의 공리주의( Utilitarianism) 사상의 기초로 행복론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밀은 ‘좋은 정치’를 추구했으며, 이것을 이상적인 정치라고 보면서, 그의 <대의정부론>에서 정부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따라서 정부 형태는 최고의 권력이 국가 구성원 전체에 있는 것이며, 또한 모든 시민이 전국 차원에서 공공의 임무를 수행하며, 정부 일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바, 이를 통하여 구성원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20세기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행복론」(The Conquest of Happiness)에서 인간의 삶을 통한 행복을 주장하고 있다. 러셀은 자기몰입, 염세주의, 경쟁, 권태, 피로, 질투, 죄의식,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두려움 등 아홉 가지를 불행의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행복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삶에 대한 열정과 폭넓은 관심, 사랑, 가족 등을 행복의 비결로 꼽으면서, 특히 러셀은 삶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바깥세상으로 돌리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3. 정치체제와 공동체 행복
1). 정치화의 시대와 행복
현대사회는 정치화의 시대(Age of Politicization)이며, 이는 정치가 우리의 일상생활의 구석구석을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맞이하여 끊임없이 정치의 굴레 속에서 구성원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투쟁하여 왔다. 또한 정치지도자들은 이러한 구성원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을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등 공직에 선출하여 주면, 행복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만들 수 있다고 선거 때마다 무수히 공약했다. 그러나 이들의 공약(公約)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헛된 공약(空約)이 되어 오히려 국민들은 정치에 실망하고 있다.
행복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정치사회 환경의 변화에 의하여 행복지수는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때문에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정치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한 삶도 영위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은 정치지도자들의 선거공약이 다분히 정권장악을 위한 임기응변적이고 또한 현실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일시적으로 현혹되어 특정 후보자나 정당을 지지, 행복한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선거 후 이런 유권자의 착각은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정치지도자가 보여주는 여러 가지 불신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때로는 정치체제의 변화에 따라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질은 변화될 수 있으며, 또한 이런 사례는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한 삶을 향한 변화가 일어나려면 구성원의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영향을 주는 정치체제, 경제구조, 사회구조와 같은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국정 평가의 기준과 선거 공약, 정책결정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되며, 이렇게 하기 위하여 정치지도자들은 공동체 구성원들과 더욱 많은 대화, 토론, 발표를 해야 되고 이런 과정에서 단순히 경제적 측면의 국내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 수치보다는 지니(Gicni)계수, 노동시간, 삶의 만족도, 신뢰 수준과 같은 일상적인 삶과 더욱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주제들을 논해야 된다.
정치지도자들이 과거처럼 경제가 성장하고 GDP가 늘어나면 국민들이 더 행복해진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더 행복해져야 경제도 성장하고 GDP도 늘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인식을 전환시켜 주어야 한다. 과거에 주택이 부족하고 도로가 없던 시절에 주택을 건설하고 도로를 확장하는 것은 GDP와 삶의 질을 모두 높이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주택 건설이나 도로 확장 등 GDP 증가보다는, 오히려 교육환경, 문화여건, 환경보존과 같은 문제가 더욱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한 삶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형성하는 것이 오늘날 각국이 지니고 있는 정치과제이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정치체제의 실험,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정치지도자의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정치세력의 정치운영에 대한 경험 등이 상호 조화를 이루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다.
2). 국가와 행복
개인의 행복은 시대적 환경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시각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서구의 경우, 앞에서 고찰된 바와 같이 정치철학자들은 개인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삶의 방식에 따라 행복에 대한 수준의 차이는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자유주의적 사고를 가진 서구 정치철학자들은 국가와 개인을 대립시켜 국가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오히려 개인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더욱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근대국가관이 형성되면서, 특히 국가의 존재가 더욱 증대되면서 국가와 행복에 대한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정치체제에서는 국가에 의한 정치관이 개인의 행복과 깊은 관련성을 나타내고 있다. 국가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안보의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구성원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점증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목적, 기능, 그리고 존재 양식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정치라고 해석하는 기본적 전제 하에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라는 공동체의 기원을 언제부터 기준 하느냐에 따라 해석상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어느 한 국가의 구성원으로 국민이 되기 때문에 국가가 정하는 법률에 따라 권리와 의무가 있으며, 이를 통하여 개인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현상설에 기초한 개인의 행복관은 국가가 어떠한 정치체제를 가지고 운영되느냐에 따라 개인이 행복 수준도 결정된다고 보고 있다. 국가가 행하는 모든 것이 정치라고 본다면, 이에 구성원인 개인은 국가가 하는 일에 따라 운명을 같이 하게 되며, 따라서 개인의 행복 수준도 결정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특히 국가의 정치지도자가 국가의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단순히 국가의 권력이 왕조시대와 같은 개인의 사유물로 취급되어 사용될 때 구성원은 왕과 백성의 주종관계로서의 위치에서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개인의 존재는 무시된 상황에서 생활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의 정치지도자가 민주정치체제에서 선거와 같은 정치과정을 통하여 구성원의 선택에 의하여 국가를 운영, 수평적 관계로서 상호의존적 관계로 인식되고 또한 권력의 사용이 사익을 아닌 구성원 전체의 공익을 위하여 사용되며, 이런 과정에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 소속감을 가질 때 행복도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 지도자의 국가 경영철학은 현대 민주정치에서 추구하는 이념인 것이며, 우리는 이를 통하여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개인보다는 사회가, 개인주의보다는 공동체주의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될 방향이다. 공동체와 이성을 강조한 고대 정치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 같이 불행한 사회 속의 개인의 행복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정치지도자들은 깊이 인식해야 될 것이다. 특히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시대정신에 따라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행복한 것이 선진복지사회라는 인식 하에 정치지도자는 물론 정치제도 역시 이를 추구하는 정치운영 방식을 고민해야 될 것이다.
4. 지방정치와 주민 행복
1). 21세기는 지세화 시대
한국은 지방자치시대를 넘어 지방정치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금년은 지방정치가 도입된 지 30년이 되는 해다. 1995년 6월27일 실시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벌써 8차에 걸친 직접선거를 통한 지방정치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까지 사용된 지방자치(Local Autonomy)라는 용어는 중앙정부의 하위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지방은 하나의 정치주체로서 중앙정치에 비견되는 지방정치(Local Politics)가 되어야 한다.
지방정치의 개념은 이미 23년 전인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 (WSSD: 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에서 발표된 지방정부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필자는 당시 한국NGO대표단의 일원으로 지방정부 선언 선포식에 참석하였다.
2002년 9월 개최된 WSSD회의에서 각국 정상들과 NGO대표들은 지세화 (地世化: Locbalization: Localization+Globalization) 시대의 등장과 더불어 지방정치시대의 도래를 선포했다. 즉, 20세기를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방적으로(Thinking Globally, Acting Locally)”라는 구호로 세계화와 지방화의 합성어인 세방화 (世方化: Glocalization: Globalization+Localization) 시대라고 지칭한다면, 21세기는 “지방이 세계를 움직인다(Local Action Moves the World)”라는 표어 아래 지세화시대로서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강조했다.
2). 지방정치가 행복의 주체 되어야
최근 우리는 미증유의 정치혼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를 기해 선포한 비상계엄령으로 인하여 1945년 해방 이후 최악의 정치 위기에 놓여 있다. 다행히 비상계엄령 선포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 국회 본회에서 비상계엄령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었으며, 이후 국무회의 의결로 비상계엄령 해제가 선포됨으로서 약 6시간 만에 완전히 비상계엄령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정치사회가 겪는 혼란은 초불확실성에 쌓여 있다. 윤 대통령은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어 업무가 정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검찰에 의하여 기소되었다. 동시에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12월26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시태가 발생했다.
이번 비상계엄령 선포 사태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반으로 국론은 극도로 분열되고 있으며, 또한 세계경제권 10위의 선진국인 한국의 국격은 급격히 추락했으며, 환율은 외환위기 때와 유사한 수준으로 상승, 수출 한국의 경제위기가 도래하고 있어 민생은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정치사회 상황 하에서도 그나마 정치사회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30년 동안 뿌리내린 지방정치 덕분이다. 만약 시·도·군과 같은 지방자치단체 장이 과거와 같이 중앙정부에서 임명된 단체장이었다면, 단체장들은 중앙정치의 눈치만 살피느라 지역민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30년간 뿌리내린 지방정치로 인해 지방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탄핵 국면 등 중앙 정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지역민들을 굳건하게 지키는 방파제, 아름드리나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국정 공백과 혼란 속에서도 도·시·군과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국정혼란을 최소화 시키며 지역민을 위한 정책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지역민의 행복을 주는 주체는 중앙정치가 아닌 지방정치가 되어야 한다. 지방정부가 지역의 사정을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지방정치를 더욱 공고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지방정치가 완전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에 집중된 행·재정적 권한, 중앙정치권이 틀어쥐고 있는 단체장 및 지방의원 공천권을 개혁해야 한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방정부의 경우, 중앙 정부의 지원과 통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고, 지방 정부를 이끌어갈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당락이 중앙 정치권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로 인해 지역민을 위한 복지, 문화 등 행복과 관련된 정책수행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방정부가 재정적 자립을 이뤄야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지방정치가 중앙 정치와 행정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정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재정적 권한이 확대되고 사무 권한도 대폭 이양돼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이다.
5. 지방정치 공고화를 위한 개혁 과제
1). 헌법 개정의 필요성
최근 개헌 논의가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대혼돈 상태에 빠져있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 쟁취만을 목표로 하는 정글의 법칙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어 이를 제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의 일환으로 개헌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1987년 우리나라 국민이 쟁취한 민주헌법은 이제 38년이 지나 그 수명을 거의 다하고 있어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치권이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87년 개정된 제9차 개헌은 권력구조와 관련해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에는 5년 단임제의 폐기에 따른 임기 4년의 대통령 중임제, 책임총리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책임제를 비롯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가 헌재에서 인용된다면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여건 상 개헌문제 논의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들과 정치권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음으로 권력구조 개편 등과 관련된 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조속한 기간 내에 개헌을 통해 삼권 분립이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축소해야 된다.
현행 소선구제에 의한 양당제 중심의 선거제도 역시 개혁해야 된다. 지난 22대 총선거에서와 같이 지역구 투표율에서 불과 5.5 %포인트 이기고도 무려 71석을 더 가져가는 선거제도로는 현재와 같은 여야 간 극한적으로 대립된 국회운영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중대선거구제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다양한 국민의 여론이 반영될 수 있는 다당제를 구현할 선거제도의 개편도 중요한 개혁 과제이다.
2). 지방분권의 과제
앞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최근과 같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그런대로 국정이 운영되고 국민이 동요되지 않고 있는 것은 지방정치가 나름대로 안정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개헌 논의에는 현행 중앙정부 중심의 국정 운영을 지방정부의 분권 강화 방식으로 전면 개편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 논의는 지난 1월 8일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으로 취임한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등 광역자치단체장들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들 광역자치단체장들은 지방자치 30주년을 맞은 올해를 최적기로 보고 있으며, 이에는 시민사회단체도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 추진을 촉구하며 개헌 논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방의회에 대한 독립성 강화도 지방분권의 필수 요소이다. 2020년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지방의회가 인사권 독립을 이뤘다. 그러나 아직 완벽한 조직권을 갖지 못하고 있고 또한 예산 편성권은 여전히 집행부에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지자체를 효과적으로 견제, 감시하는데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6. 정치는 행복 지수 높여야
한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국가공동체이다. 과거 조선시대와 같은 왕조국가에 있어 백성의 행복은 전적으로 절대통치자인 왕의 통치방식 여하에 달려 있었다. 때문에 정치를 통한 행복이란 의미 자체가 구성원 스스로의 노력이나 투쟁에 의하여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 수준에 대한 평가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나 민주국가가 성립된 이후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 개념은 정치체제 형태와 지도자의 리더십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행복은 단순히 경제성장에 따른 부의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유·인권·정의 등과 관계를 밀접하게 갖게 되었다. 이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국민들에 의하여 요구되어 온 행복과 관련된 정치의 주요 의제이다.
유엔(UN)은 매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를 발표하고 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 '지속가능한 발전해법 네트워크'(SDSN)가 2024년 3월 20일 발표한 '2024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143개 국가 중 52위이다. 한국의 행복도는 10점 만점에 6.058점을 기록했다. 가장 행복한 국가는 핀란드로 7.741점을 받았으며, 아시아에서 상위국가는 싱가포르(30위), 대만(31위)이다.
유엔에서 조사하는 행복지수는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기대 수명, 삶에서 선택의 자유, 관대함, 부패인지도 등으로 측정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행복은 개인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개인이 아닌 다른 외적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정치적 변수와 상당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기를 원한다. 행복지수에 대한 평가는 개인이 지닌 역량이 주요 변수이기는 하지만, 인간사에 있어 정치는 일상생활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임으로 정치체제의 형태와 정지지도자들의 리더십 여하에 따라 개개인의 생활은 물론 공동체 구성원의 행복지수가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권은 한국인의 ‘불행지수’ 아닌 ‘행복지수’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국정목표를 설정,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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