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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評>탄핵 심판 이후가 더 중요하다. - 문화일보 2017.03.09 -

dd100 2017. 3. 10. 16:36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 前 동덕여대 총장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은 물론 모든 국민의 시선이 온통 헌재 8명의 재판관에게 집중돼 있다. 국내외 언론도 헌재의 최종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한국 정치 변화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 대 부정의 대립이 팽팽하다.

지난주 98주년을 맞은 3·1절과 토요일에 열린 대규모 집회 장면을 회상해 보면,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어떤 판결을 하든 국론 분열의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 ‘탄핵 찬성’의 촛불집회가 19차, ‘탄핵 반대’의 태극기 집회가 16차 등 대규모 집회가 평화적으로 개최됐지만 이들 2개의 집회에서 외친 구호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헌재 부근에서 매일같이 열리는 과열된 집회 현장을 보면 과연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를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지 않다. 헌재 재판관들에게 신체적인 위협까지 가할 가능성 때문에 삼엄한 경호 하에 출근하는 현장을 보면 이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더구나 양쪽 집회에는 유력 정치인들이 직접 참가해 자신들의 의견과 다른 헌재의 결정이 선고될 경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하는가 하면, 심지어 광장이 피로 물들 수 있다고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집회 참가자들이 손에 든 피켓을 보면 때론 공포심을 갖게 된다.

헌재는 단순히 사법적 판단만을 하는 헌법적 기구는 아니다. 사법적 판단만을 필요로 한다면 이런 기능은 대법원이 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탄핵과 같은 정치적 문제는 사법적 판단과 더불어 정치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미국과 달리 우리는 탄핵에 대한 최종 심판을 헌재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탄핵의 경우, 연방의회가 최종적인 결정권을 갖는 것이 탄핵에 대한 정치적 성격 때문이라면 우리는 헌재에까지 맡겨 정치적 견해에 사법적 판단까지 합산해 탄핵으로 인한 국민적·정치적 논쟁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겠다는 고도의 함축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헌재가 탄핵 소추 인용이든, 기각 또는 각하든 어떤 결정을 해도 국론 분열은 치유되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며, 이는 국가 발전에 큰 걸림돌로 남을 것이다. 이렇게 예상되는 상황에서, 헌재가 국민통합을 위해 사법적 판결 이외에 정치적 판결까지 겸한 성경의 솔로몬식 판결을 할 수는 없을까. 이것이야말로 헌재가 가지는 사법적·정치적 판결의 함축적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사례는 1954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내린 인종차별금지 판결에서 볼 수 있다. 브라운 등 흑인 학생들이 평등권 침해를 주장, 소송을 낸 이 재판은 흑인의 민권 신장에 중요한 계기를 가져오게 된 일명 ‘브라운 대 토피카교육위원회 (Brown vs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판결이다.

이 소송에 대해 대법관들 간 판결에 대한 이견이 있었음에도 불구, 판결이 가져올 사회적 혼란을 우려해 만장일치 판결을 한 것이다. 소수 의견을 가진 대법관을 얼 워런 대법원장이 직접 설득해 만장일치 판결을 내놓았다. 당시 일부 대법관은 ‘분리하되 평등의 원칙’ 적용을 유지해 인종분리정책을 합헌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를 설득해 만장일치로 위헌이라고 판결, 국론분열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이런 대법원의 만장일치 결정에도 정치인들의 국민통합 노력이 더해지지 않으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미국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아칸소 주민 등 남부인들의 인종 편견적인 태도가 계속 발생,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연방법원의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연방군을 파견, 학교 운동장에 주둔, 흑인 학생들을 교실까지 호위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실시했다.

탄핵 판결은 한국 정치가 선진화될 수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헌재의 만장일치 결정이 있더라도 이에 정치인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결코 국민통합은 이뤄질 수 없다. 이제라도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대선 주자와 정치인, 그리고 집회 참가자 모두 헌재 판결을 수용, 국민통합에 앞장서겠다는 ‘헌재판결수용 대국민서약’을 하길 바란다. 특히 헌재와 정치권의 국민통합 의지를 마지막까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