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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부전선에서의 1일 소대장 - 경기일보 2014.12.22 -

dd100 2014. 12. 23. 10:41

지난 9일부터 1박2일 동안 강원도 양구 소재 21사단 백두산 부대를 찾아 1일 소대장 생활을 하였다. 국방홍보원 산하 국방TV의 ‘우리는 전우’라는 프로그램의 촬영을 위하여 방문한 백두산 부대이기는 하지만, 젊은 병사들과 지낸 중동부전선에서의 하루는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백두산 부대는 한국전쟁 말기인 1953년 1월 창설된 부대로서 백두산까지 진격하여 태극기 꽂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부대 명칭을 지었다고 한다. GOP사단으로 작계지역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대이며, 전방 사단 중 가장 길고 넓은 섹터의 철책선을 담당하고 있으며,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파던 제4 땅굴이 발견된 곳으로 겨울에는 영하 20도 전후의 강추위가 몰아치는 최전방부대이다.

필자는 1968년 3월 학도군사훈련단(ROTC) 6기생으로 소위로 임관되어 1970년 6월말까지 백두산부대 GOP에서 소대장 근무를 하였다. 가칠봉, 도솔산, 펀치볼 등과 같은 가장 험난한 산악지대를 방어하고 있는 소초의 소대장을 지낸 필자는 이번에 46년만에 근무하던 소대를 방문한 것이다.

필자가 소위로 임관된 시기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김신조 일당의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하였던 사건 직후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남북한 긴장관계가 극심하던 해이다. 그해 여름에는 울진·삼척무장공비침투사건까지 발생, 필자의 최전방 소대장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한 철책선 작업, 야간 잠복 근무, 동절기 시 1미터가 넘는 폭설 제설작업 등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병사들과 보낸 청년장교 시절의 추억이 새삼 되새겨 진다. 동절기에는 폭설로 식수를 길어오지 못해 야간 불침번이 페치카 난로 위에 큰 양철 물통을 올려놓고 밤새도록 눈을 퍼부어 녹여 만든 물을 밥물과 식수로 쓴 다음 세수를 하던 전방생활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하던 열악한 군 생활이었다.

당시 강원도 양구 백두산 부대까지 가려면 춘천을 지나 화천 오음리를 거쳐서 가는 꾸불꾸불한 비포장 산악길을 곡예하면서 5시간 정도를 가고 또 전방 부대까지 험악한 산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올라가야 했던 머나먼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양구까지 포장도로에다 직선으로 터널을 뚫어 불과 2시간도 안되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단축되었다.

소초시설도 아주 현대화되었다. 신세대 병사들을 위한 체력단련실에는 탁구대, 러닝머신 등이 있는가하면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컴퓨터, 노래방 기기도 설치되어 있고 도서실에는 교양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일반전화로 일과 후에는 부모님, 친구들에게 언제든지 통화가 가능하고 분대별로 개별 침대가 있으며, 사워실에서 뜨거운 물로 목욕도 풀 수 있다. 식사는 대학 구내식당의 식단과 차이가 없으며, 필요하면 라면과 같은 간식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야간 잠복과 순찰 근무를 하는 병사들에게 살을 베는 강추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툼한 방한복도 강추위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남쪽 철책선에는 일몰시부터 밝은 전등이 켜지지만 북쪽에는 전기가 부족하여 그야말로 밤에는 깜깜한 암흑이다. 이런 혹독한 환경을 견디어내는 장병 때문에 중동부전선은 오늘도 이상이 없는 것이다.

이번 전방 방문에서 필자는 생일케이크를 사가지고 가서 첫날 저녁에는 12월 생일을 맞는 병사들과 생일파티를 하였다. 46년 전 소대장 시절 매달 생일파티를 할 때 즐거워하던 병사들의 모습이 떠올라 생일파티를 한 것이다. 이튿 날에는 마침 필자의 70회 생일이라 장병들의 축복 속에 생일잔치를 하였으니, 이보다 더욱 기분 좋은 생일잔치가 어디 있겠는가. 자랑스럽고 늠름한 대한의 건아! 21사단 백두산 부대 장병 파이팅!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前 동덕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