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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내 한 표가 국격을 높인다 - 세계일보 2012.04.10 -

dd100 2012. 4. 12. 09:15
헛공약·저질후보 준엄한 심판을
지연·학연 얽매인 구태 청산해야
어제 자정을 기해 열전 13일간의 선거운동이 끝나고 오늘 정당은 물론 각 후보자는 유권자로부터 심판을 받게 된다.

지난 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집으로 배달된 투표안내문과 선거공보에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우선 선거공보의 분량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두툼했다.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는 불과 3명밖에 되지 않지만 이번 선거에 비례대표 후보를 출마시킨 정당이 무려 20개나 되다 보니 선거공보물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김영래 동덕여대 총장
두 번째는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비례대표 투표용지의 정당 게재순위를 결정하는 데 20개 정당이 등록된 것으로 표기됐으나 집으로 배달된 선거공보에는 12개 정당 선거홍보물만 제공됐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나머지 8개 정당은 후보는 냈지만 유권자에게 선거공약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할 정도로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다. 이들 정당은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유권자의 투표에 무엇을 참고해 선택하라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번 총선에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고 후보를 출마시킨 여야의 주요 정당조차 불과 수개월 전에 개명했을 정도로 정당정치가 제도화되지 않은 한국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군소정당의 난립만을 탓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유사한 이름의 정당도 많아 투표 시 유권자에게 정당 선택에 상당한 혼란을 줄 것 같다.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는 무려 10명이 출마해 전국 최고의 경쟁률을 나타내고 있으며, 지역구는 전국 평균 경쟁률이 3.7대 1, 비례대표는 3.5대 1이다.

오늘부터 유권자들은 골목을 누비며 자신만이 최고의 애국자인 양 소리치는 후보자들의 시끄러운 확성기 소음도, 해당 지역구도 아니며 더구나 잘 알지도 못하는 후보자로부터 쉴 새 없이 보내오는 문자 메시지도, 막말과 극단적인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치인의 언어폭력에 대한 여과없는 보도로부터도 일단 해방될 것 같다.

이번 선거는 역대 선거 중 가장 국민을 실망시킨 것 같다. 18대 국회가 역대 국회 중 폭력국회, 무능국회, 저질국회 등 각종 수식어가 붙은 최악의 국회라고 한다. 새로 출마하는 후보자와 정당은 유권자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선거운동 과정에서 전달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전개됐으니 정치에 대한 불신만 심화시켰다.

4년 전 총선에서는 타당성이 낮고 실현성 없이 유권자만 현혹시키는 헛공약을 남발하는 후보자와 정당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매니페스토의 열기가 대단해 선거문화가 변화될 가능성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정책경쟁은 뒷전이고 이념논쟁, 막말경쟁, 극단적 국민 편가르기 선거운동이 판을 쳤다. 주요 정당이 겨우 내놓은 역점 정책이라는 것이 국가재정에 대한 심각한 고려 없이 인기영합적인 복지경쟁이나 했으니 유권자는 과연 어떤 후보와 정당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그러나 유권자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민주정치는 선거에서 시작해서 선거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선관위에서 배달된 선거공보물을 다시 꼼꼼하게 챙겨보아 어느 정당과 후보자가 과연 우리의 미래를 맡길 공약을 충실하게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유권자는 투표장에 반드시 나가 귀중한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결국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격 향상은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의 몫이다. 지연, 학연, 혈연, 그리고 금권과 같은 구태의연한 투표행태로부터 탈피해 국격 높은 유권자 의식을 오늘 투표에서 보여주자.

김영래 동덕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