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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전으로 밀린 정기국회 - 2011.09.04 - 세계일보

dd100 2011. 9. 13. 16:49

지난 1일부터 100일간의 회기로 정기국회가 개회됐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정기국회 개회사를 통해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우선 국회다운 국회가 돼야 한다고 하면서, 특히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중요한 길은 산적한 민생법안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법을 잘 지켜야 하고 정쟁보다 정책을 토론하는 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매번 듣는 국회의장 개회사이지만 국회가 과연 국회의장의 바람과 같이 신뢰받는 국회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정기국회는 전·월세 급등,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값 등록금 등 각종 중요한 민생문제를 다루는 회의이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국민의 시선이 집중돼 있는데, 오히려 국회에 대한 신뢰는 저하되고 있다.

국회의 신뢰 저하는 정기국회가 개회되기도 전에 이미 무너져 버렸다. 국회는 8월31일 열린 8월 국회 본회의에서 여대생에 대한 성희롱 발언으로 국회특별윤리위원회조차 제명 결의한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과감하게 부결시켰다. 투명하게 진행해야 될 국회가 심지어 방청객과 취재진까지 퇴장시키고 제명안을 부결시킨 다음 여론을 의식, 겨우 9월 한 달 동안 그것도 유급인 국회출석 금지로 결정했는데 과연 이런 국회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까. 강 의원은 지난 5월 1심에서 의원직 상실 형에 해당하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까지 받아 이미 국민의 대표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를 동료의원이라는 이유로 감싸고 있는 국회는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정기국회는 제18대 국회로서는 사실상 마감하는 국회이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있기 때문에 이미 국회의원들 마음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만 관심 있지 의정활동에는 사실상 큰 관심이 없다. 더구나 오는 10월26일 실시되는 서울시장 선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서울시교육감 선거로 인해 여야 간은 물론 당내에도 계파 간의 갈등이 심화돼 의정활동은 이미 뒷전으로 밀려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룰 의제가 얼마나 많은가. 정기국회는 지난해 정부가 사용한 세금에 대한 결산, 2012년 새해 예산안에 대한 심의는 물론 국정감사가 있기 때문에 가장 심혈을 다해 의정활동을 해야 되는 기간이다. 그런데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특정 정치인에게 눈도장이나 찍으려 행사 참석에 분주하는가 하면, 아예 선거구에서 사전 선거운동을 하느라 여의도에서는 보기조차 힘든 의원도 있다.

현재 국회에는 심의를 기다리는 의안이 무려 6700여건이 된다고 한다. 남은 국회 일정을 감안할 때 이들 의안을 심의하려면 밤새워 심의해도 부족할 지경인데 온통 선거에만 관심 있어 의안 심의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니 이들 의안은 결국 사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해 정부가 사용한 예산에 대한 결산심의는 말만 심의이지 극히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무엇을 결산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이다. 예산심의는 최근 수년 동안 법률에 정한 법정시한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정쟁만 하다가 연말 막판에 밀실에서 서로 나눠 먹기식으로 여야 간의 합의라는 이름하에 처리하거나 또는 여당에 의해 단독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의원들은 선거를 의식해 지역사업 챙기는 데만 관심 있지 국가백년대계를 위한 국정과제는 등한시하고 있다.

국정감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책 대안 제시 없이 호통이나 치는 국정감사 현장, 증인채택 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감사조차 하지 않아 하루종일 대기하다가 돌아가는 공무원들, 질문만 하고 답변도 듣지 않고 자리를 뜨는 국회의원들, 이런 국정감사로 과연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국회다운 국회, 민생을 위한 국회 상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