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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래의 정치이야기] 국격(國格)과 정치리더십

dd100 2022. 4. 8. 09:05

[공감신문] 김영래 칼럼니스트=봄의 계절, 4월이 왔다. 산과 거리에는 개나리, 진달래, 매화 등이 꽃망울을 터트려 봄의 소식을 알리고 있다. 비록 코로나19가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인해 시민들의 마음은 움츠려져 있지만, 생기있게 닥아 오는 봄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계절의 봄은 왔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과 같이 국민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정치의 봄은 오고 있지 않다.  

국가에는 일반적으로 지칭되는 품격인 국격(國格)이 있어 각국은 국격을 높이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국격은 특히 대외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국가의 품격으로서 국가공동체의 자긍심을 높여주고 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는 인격(人格)이 있고 상품에는 품격(品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재력이 있고 또한 막강한 권력과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다고 인격적으로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은 돈과 권력, 지식에 관계없이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인격자다. 상품도 값이 비싸고 또한 멋있게 포장이 됐다고 반드시 그 상품이 좋은 물건은 아니다.

이와 같은 격의 구분은 국가에도 적용된다. 인구 약 1억4600만명, 세계 제1위의 광대한 영토, 가스 등 풍부한 자원, 세계 제2위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러시아는 분명 대국이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등으로 인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비난받는 국격이 낮은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반면 인구는 불과 약 877만명, 국토면적은 러시아의 414분의1 정도인 유럽의 소국 스위스는 부존자원도 풍부하지 못하지만 지구촌으로부터 가장 안정되고 또한 살기 좋은 나라다. 국제적십사 등 다양한 국제기구 본부가 스위스에 위치하고 있어 스위스의 국격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정치리더십은 국격 형성의 주요 요인

개별 국가의 국격은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 형성되고 있다. 영토의 크기, 부존자원, 군사력, 인구, 교육제도, 문화, 사회적 자본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할 수 있으나, 이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대통령이나 총리 등을 비롯한 정치지도자가 보여주는 리더십이라고 생각된다.

정치인을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바, 영어 사전에는 정치가(政治家)를 ‘Statesman’이라 하며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정객(政客)을 ‘Politician’이라 표시하며 정상배, 정치꾼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치가는 국가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정객은 다음 선거의 당선 여부에만 관심있는 정상배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 국민들에게 케네디(John F. Kennedy)는 정치가,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물러난 닉슨(Richard M. Nixon)은 정객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치가가 권력보다는 국가장래에 대한 비전과 정치인의 소명의식을 강조한다면, 정객은 권력의 쟁취를 위해서는 권모술수와 사적이익, 당파적 진영논리를 우선시해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퇴임한 메르켈(Angela D. Merkel) 총리는 독일의 국격을 최고로 향상시킨 가장 존경받는 정치지도자가 됐다. 메르켈은 동독 출신의 최초 여성 총리로서 역대 독일 총리 가운데 51세라는 가장 젊은 나이에 집권했다. 집권 당시 보수 성격의 기민당이 가까스로 승리한 데다 독일의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진보 성향의 최대 정당인 사민당과 대연정 정부를 구성, 타협과 양보를 통해 성공적인 국정을 운영함으로써 유럽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독일의 국격을 제고시킨 정치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통합과 협치의 정치리더십 보여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8일 저녁 청와대 상춘제에서 만찬을 겸한 첫 회동을 했다. 대선 이후 19일 만에 회동하는 것이다. 역대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의 만남은 대부분 열흘 안에 이뤄졌다. 이제까지 대통령과 당선인 회동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때는 1992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김영삼 당선인 회동으로, 이는 당시 대선 후 18일 만에 회동이 이뤄졌다.

그동안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과의 회동은 여러 가지 곡절이 많았다. 앞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지난 3월16일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하기로 했으나 불과 4시간 앞두고 무산됐다. 당시 양측은 회동 무산 이유에 대해 “합의에 따라 밝히지 못한다”고 했지만, 임기 말 인사문제를 두고 신·구(新·舊) 권력이 충돌한 것이란 해석이 있다.

실제로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과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한국은행 총재 지명 등으로 더욱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5일 감사원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임기 말 감사위원 제청에 부정적 입장을 밝혀 감사위원 임명을 둘러싼 양측 갈등 소지가 해소된 것이 회동 성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과 회동은 역대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간 가장 늦은 회동이었지만 회동 시간은 가장 긴 시간이었다. 주어진 의제 없이 만났지만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 등에 문 대통령이 협조하기로 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국내외정세가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세계경제의 불투명성과 국내 물가 급등, 또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으로 안보 위기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 신·구권력이 갈등을 보여 국민들은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이번 회동은 비록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회동 이후 전개되는 청와대와 당선인 측 간 인사문제, 집무실 이전 협조문제 등 정치상황은 이러한 회동 분위기와는 달리 또 다시 충돌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여야 정당 간 치졸한 난타전도 국민통합과 협치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대선 때 약속했던 정치개혁도 진전이 없는 공수표인 것 같다.

신·구 권력이 국민통합과 협치의 정신 하에 현재 직면한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판에, 오히려 신·구 권력이 갈등해 안보·민생 공백,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다. 정권 교체기에 신·구 권력이 갈등하게 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오게 되고 또한 대외적으로 국격도 손상을 입게 된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것을 말로만 하지 말고 ‘Politician’ 아닌 ‘Statesman’의 정치리더십을 행동으로서 보여줘야 한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각각 대통령 취임식과 당선인 인사에서 행한 연설에서와 같이 국민통합과 협치 정신을 강조한 초심을 잊지 말고 실천에 옮김으로서 국격을 제고시켜 주기를 간절히 요망한다.

글 김영래 아주대 명예교수/내나라연구소 이사장

- 전 동덕여대 총장
- 전 한국정치학회 회장
- 전 한국 NGO학회 회장
- 전 아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 현 아주대 명예교수/내나라연구소 이사장

출처 : 공감신문(https://www.gokorea.kr)